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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2019 인도 라다크

2019 인도 잔스카르 18일차-파듐에서 랑듐으로


2019.8.7.

 

 

8시 조금 넘어 눈을 떴는데, 창문이 깨질 듯이 쿵쾅거리며 바람에 흔들린다.

 

.. 날씨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오늘 이동이 가능할까?

 

어제 기름까지 확보해서 고민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날씨는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다.

 

 

: 내일 날씨가 좋다는 보장이 있으면 하루 기다렸다가 내일 가자고 할 텐데, 이 지역이 인터넷이 안 되니까 일기예보도 모르고 참...

 

낭군: 일기예보를 알 수가 없지.

 

 

정말 한참을 고민했다.

 

 

낭군: 출발하자.

 

: 그래!

 

 

푹탈(Phugtal)을 갈 게 아니라면 오늘 출발하는 게 딱 적당한 일정이긴 했다.

 

한식당 아주머니께서 푹탈을 강력 추천 하셨지만, 맵스미에 나오는 트래킹-직접 발로 걸어야 하는-코스가 12km인 것을 보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낭군 역시 12km는 아닐거라고 얘기했으나,

 

아저씨 말씀으로는 걸어가는 데 1시간 30분 걸린다고 하셨는데, 그럼 구경하는 시간까지 하면 왕복으로 4시간이잖아!

 

.. 날씨가 시원해서 걸을 만하면 모를까, 장글라에 다녀오면서 등이 타는 듯 한 더위를 느꼈기 때문에, 푹탈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몇 년 지나면 푹탈까지 길이 뚫려서 걷는 트래킹 코스가 사라질 거라며 아주머니께서 매우 아쉬워 하셨었는데,

 

난 그때 속으로 그럼 길 뚫린 다음에 오토바이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더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서... 우리 계산대로면 오늘 파듐을 뜨는 게 가장 좋은 일정이었다.

 

 

낭군: 아침식사 여기서 할 수 있을까요?

 

주인아저씨: ~ ~ 어떤 걸 먹을거예요?

 

낭군: 오믈렛 가능한가요?

 

주인아저씨: 오믈렛, 토스트 다 돼요

 

낭군: 그럼 오믈렛과 토스트 부탁드려요.

 

 

아저씨가 기름통에 넣어 주신 5리터 기름을 오토바이에 채우고,

 

짐을 전부 오토바이에 잘 묶은 다음 아침식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 ... 굉장히 깔끔하게 잘 해놓으셨다.

 

 

생각외였다.

 

정말 깔끔하게 세팅을 쫙~ 해 놓으신 걸 보고 조금 놀랐다.

 

명색이 호텔이라는 것 때문에 많이 신경 쓰시는 것 같았다.

 

마실 것으로 블랙티와 커피를 준비해 주셨고, 토스트는 한 열 장쯤 구워 주셨는데, 우리는 두 장씩 먹으면 항상 충분하다.

 

잼은 일반 버터에, 땅콩버터에, 잼에 꿀까지 전부 준비해 주셔서,

 

지금까지 먹은 아침식사 중에 가장 많은 토스트용 소스(?)를 제공받은 식사였다.

 

토스트 네 장에 땅콩버터를 발라 고소하게 먹고,

 

따끈따끈하게 만들어 주신 마샬라 오믈렛도 맛있게 먹었다.

 

블랙커피 한 잔과 함께 매우 만족스러운 아침식사 끝.









 

: 대충 계산해 보면 500루피까지 9장이면 될 것 같아.

 

낭군: .... 이틀 숙박비에, 아침 식사에, 5리터 기름까지.. 하면 4,000루피 쯤 되겠네.

 

: 2병도 있지.

 


 

아침식사가 끝나고 주인아저씨가 내민 계산서를 보니 물 2병까지 포함해서 3,845루피.

 

 

: ? 생각보다 적게 나왔는데?

 

낭군: 기름 값을 싸게 해주셨네. 여기 기름 값이 리터당 100루피 정도 한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아저씨가 한 120루피 정도 부를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100루피도 채 안 되게 계산해주셨네.

 

: , 바가지 씌우려는 생각이 전혀 없으신 것 같아. 레에서부터 기름을 가져오려면 이 곳 주유소가 리터당 100루피씩 받는 건 그럴 만 하다고 생각되는데.

 

 

기분 좋게 출발~



어제 한식당의 홍콩 손님이 알려줬던 베이커리 가게를 향했다.

 

땅콩초코쿠키가 너무 맛있어서 꼭 사서 먹고 싶었다.

 

베이커리가 있는 골목은 공사 중이라 오토바이가 들어갈 수 없어서, 메인 로드에 낭군이 기다리고 서 있고 혼자 걸어 들어갔다.

 

꼼꼼히 한 집 한 집 문 안쪽을 살펴보며 쿠키나 빵을 팔고 있는 집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오전 10시였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은(셔터가 내려가 있는) 집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인 듯 했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고...(하필 베이커리 가게 위치를 모르는 인도 사람에게 물었던 듯)

 

조금 실망한 채 다시 길을 돌아오는 데 오...!! 쿠키가 진열된 진열장이 보인다!!!

 

내가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는 타이밍에 아마도 오픈하신 듯~

 

기분 좋게 들어갔다.

 

 

: 이 초코쿠키 얼마예요?

 

아저씨: 250g60루피예요.

 

: 10조각 주세요.

 

 

북인도는 레 지역을 포함하여 모두, 과일을 사든 쿠키를 사든 전부 윗접시 저울로 무게를 잰다.

 

쿠키 한 조각을 더 넣으시더니 40루피를 달라고 하신다.

 

아 뭐야, 그럼.. 쿠키 11개에 겨우 700원 정도인거야?

 

한국에서는 쿠키 1개에 1,500~2,000원씩 하는데? 맙소사.. 너무 싸잖아!!

 

 

: 낭군!! 쿠키가 너무 싸! 11개에 700원 정도 해. 더 살까? 어떡하지? 더 살까? 한국 가져가고 싶다. 어떡해야 되지? 맛있는데 너무 싸!

 

낭군: 맘대로 해~

 

: 그럼 빵이랑 쿠키 더 사올래!

 

 

다시 가게로 들어가서 쿠키 10조각과 빵 2개를 추가로 주문했다.

 

이번엔 65루피라고 하셨다.

 

 

아저씨: 너 오토바이 타고 다녀?

 

: , 오늘 카르길로 갈 거예요.

 

 

나는 운전 못하고 우리 남편이 한다.. 중간에 랑듐에서 하루 쉴 거다.. 라고 구구절절 말 할 만큼 내 영어실력이 출중하진 않아서, ~략 오케이라고 했더니,

 

이른 시간도 아닌 이 시간에 오토바이로 카르길에 간다는 게 놀라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쿠키 21개와 빵 2개를 한화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하고 잔뜩 신이 나서 파듐을 출발했다.

 

 

: ~ ~ ~~~~

 

낭군: 하하하하. 부인 기분 좋구나? 쿠키 사서?

 

: 아니야~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어. 숙소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셔서 좋아.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해야겠어.





파듐에 들어오던 날은 녹초가 되어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신나게 구경하고 사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며 이동했다.

 

피곤해서 여유가 없이 지나치기 바빴던 마을 풍경들을 동영상으로 담으며 노르웨이 로포텐 꽃밭이 떠올랐고,

 

멀리 있는 산들을 보면서 진짜 아이슬란드 생각이 난다며 기분 좋아했다.

 

파듐에 들어올 때 뒤쪽이라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발견하며 다시 한 번 감탄을 연발했다.

 

 

랑듐까지 가는 길에 체크포인트가 두 번 있었다. 파듐 근처의 마을 입구에서 아저씨가(군인으로 보이질 않았다.) 관리하시는 포인트 한 곳,

 

랑듐곰파 입구에서 군인들이 관리하는 포인트 한 곳.

 

아저씨가 계신 체크포인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파듐에

 

(나중에 알고보니 더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고 그냥 지나친 곳들이 있었다.)

 

들어올 때 했던 것처럼, 방명록에 여권번호며 비자번호, 오토바이 번호 및 현재 시각까지 직접 기록했다.

 

.. 길을 막고 있는 문은 어떻게 열지? 하고 있는데, 저절로 열린다.

 

 

: ~ 자동인가봐.

 

 

하자마자 옆을 쳐다보고 빵 터졌다.

 

아저씨가 장치해놓은 막대기를 손수 아래로 꾹 누르시며 지렛대의 원리로 문을 열고 계셨다.

 

 

낭군: 반자동이네.

 

 

너무 크게 웃으면 비웃는 것처럼 보일까봐 크게 웃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랑듐 곰파 입구의 체크포인트는 들어올 때 기록한 것을 찾아 체크만 하면 되는 방식이라 더 간단했다.

 

그저께라는 영어 단어를 이해 못하셔서 들어온 날짜를 알려달라고 하긴 했지만.

 

쉽게 통과.

 

 

낭군: 저기 기름 실은 트럭이다!

 

: 어 그렇네! 파듐 주유소로 가는 트럭이구나.

 

 

기름을 실은 트럭을 네 대는 본 것 같다.

 

전부 파듐으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유소를 잔뜩 채워둬야 최소 1~2달은 레로 기름을 사러 가지 않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파듐은 이제 오늘 저녁부터는 주유소가 다시 오픈하겠군.

 





확실히 한 번 왔던 길이라 더 쉬운 탓도 있고, 잘 쉬다가 출발한 거라 체력이 좋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낭군은 파듐에 들어올 때보다 1.5배는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덕분에 뒤에 앉아서 얼마나 점프를 많이 했던지...

 

카메라나 고프로를 들고 있을 때는 낭군을 붙잡을 손이 없어서 전혀 대비하지 못한 채로 오토바이가 크게 점프를 했을 때는 내가 앞으로 튕겨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

 

그렇게 쏜살같이 운전을 하면서도 좋은 경치가 나오면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세운다.

 

 

: ~~ 찍을께~~~

 

 

그럴 때마다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담고,




랑듐 도착 17km쯤 전, 마못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초원길에서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점심을 먹었다.

 

점프하는 오토바이와 함께 쿠키들도 많이 흔들렸던 모양인지, 두 종이봉투 중 한 개는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배낭 깊숙이 넣어 둔 생수통 한 병을 꺼내어 손도 닦았다.

 

청결은 기본, 이제 여행이 끝나가는 데 장염으로 고생할 순 없지.

 

왼쪽 발에 가시 하나가 박힌 것 같긴 하지만,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에다 어차피 눈으로 보이질 않고 뽑아낼 방법도 없어서 일단 그냥 다니고 있다.





랑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330.

 

 

: 시간이... 너무 애매한데?

 

낭군: , 그렇지? 차라리 440분쯤 됐으면 그만 가자고 했을 텐데.

 

: 진짜 반반인데? 어떻게 하든 상관없을 것 같아.

 

낭군: 그럼 가위바위보 할까? 내가 이기면 가는 거고, 부인이 이기면 홈스테이 하고.

 

: 그래.

 

 

가위바위보를 낭군이 이겨서 산코로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한지 겨우 100m 남짓...

 

 

: ?! 잠깐만! 저기 우리가 가야하는 길 아냐? 비구름이 있는데? 이러면.. 너무 고생할 것 같은데...

 

낭군: 그럼 여기서 하루 묵을까?

 

: , 가다가 저 비구름 만날 것 같아. 그럼 춥고 물도 양이 더 불어나 있을거고, 엄청 고생할 것 같아.

 

 

그렇게 다시 급작스럽게 하루 묵기로 변경.

 

랑듐 게스트하우스 외에도 지은 지 얼마 안 된 홈스테이 건물을 미리 봐뒀었다.

 

직접 홈스테이 건물로 직행.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주인이 나올 생각을 않는다.

 

지나가는 마을 주민 아저씨께 물어보니, 이 집 주인이 잔스카르에 갔다고 한다.

 

대신 다른 홈스테이를 하면 어떻냐고...

 

홈스테이를 제안한 아저씨의 집으로 골목골목을 통과해서 막상 도착해 보니,

 

아이고.. 이건 너무 심하게 인도 현지인 집인데?

 

방은 침대가 아니라 벽 쪽으로 매트리스를 놓아두었고, 매트리스는 담요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방이라고 소개해 주시면서도 아저씨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가서 돌아다니신다.

 

화장실은 완벽하게 자연 화장실이고, 하다못해 양치질 할 수 있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도 없다.

 

작은 물통에 물을 담아 호스를 열어서 물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물통 뚜껑을 열어보니 물은 조금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세수조차 못하는 양이었다.

 

 

낭군: 세수는 우리 갖고 있는 생수로 해도 돼.

 

: ... 세수도 못 한다는 게 좀 그렇네.

 

 

가격은 600루피를 부르셨는데,

 

아침 저녁이 어차피 포함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금액적으로 매력적이진 않았다.

 

식당이 랑듐 레스토랑 한 곳밖에 없지만, 파듐에 들어오는 날 간단히 먹었는데도 250루피가 나왔던 걸 생각하면, 저녁과 아침식사를 하면 500루피는 추가로 들어갈 터였다.

 

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건, 우리의 숙박을 위한 게 아니라, 인도 현지인 집 체험을 한다는 의미밖에 없었다.

 

 

낭군: 그냥 저쪽 게스트하우스로 가자.

 

 

랑듐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 세 대가 세워진 집을 발견했다.

 

겉으로 보기엔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홈스테이 간판도 없는 일반적인 집이었으나,

 

아무리 봐도 집주인 오토바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 안녕하세요~ 안에 누구 있어요? 실례합니다~~

 

 

계단을 올라가 입구에서 소리쳤더니 외국인 한 명이 나온다.

 

 

: 궁금한 게 있는데요, 밖에 오토바이가 세 대 있던데, 당신 건가요? 아니면 여행자건가요?

 

외국인: 제 거 맞는데, 제가 여행자예요.

 

: ~! 사실 홈스테이를 찾고 있어요. 이 집이 혹시 게스트하우스 하나요?

 

외국인: , 분홍색 옷을 입은 집주인이 조금 아까 저쪽으로 나갔어요. 집 앞에 있는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텐데, 남은 방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 감사합니다.

 

 

아마도 옆 집 사람들로 보이는, 마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직접 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는 남은 방이 없다고 알려주신다.

 

 

: 방이 없대~ 게스트하우스로 가자.

 

낭군: 결국 처음 계획대로 됐네.

 

 

랑듐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와서 방 가격을 물어봤다.

 

주문, 계산, 매니저 역할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 청년(아마 이 집 첫째아들 쯤 되는 것 같다.)이 얼굴을 알아보고 웃으면서 나오더니,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가 하룻밤에 2,000루피라고 한다.

 

낭군에게 2,500루피라고 했었는데 500루피를 깎아서 부른다.

 

 

청년: 원래 2,500루피인데 500루피 깎아준 거예요.

 

: , 그래요? 고마워요~

 

 

낭군은 자기한테 2,500루피라고 방 가격을 얘기한 걸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저녁과 내일 아침식사를 포함해서 2,000루피면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됐다.

 

방은 조금 전에 봤던 홈스테이와 비교하면, 아니, 절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하게 깔끔했고,

 

심지어 1층 식당 옆으로 평소에는 문을 잠궈 두는 숙박객들만을 위한 홀도 있었다.

 

노트북과 낭군 핸드폰, 파듐에서 산 쿠키를 챙겨 들고 홀로 내려왔다.

 




홀에 들어가서는 많이 놀랐다.

 

 

낭군: 이렇게 해놨으니 호텔급으로 가격을 부르지...

 

: , 오늘 숙박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여기에 저녁을 차려줄 것 같진 않아.

 

낭군: .. 근데 여기 홀 마음에 든다. 잠자기 직전까지 여기 있다가 올라가야겠다.

 

: 응 여기 마음에 들어. 저녁 먹고 나서 밀크티 한잔 시켜서 마시면서 있다가 어두워지면 그때 방으로 올라가자.

 

 

쿠키 5개를 홀에 있던 냅킨에 덜어서 주인집 아들들에게 줬다.

 

막내아들이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이 조금 짠하기도, 기특하기도 해서 주고 싶었다.

 

 

낭군: 부인, 여기 3,985m.

 

: 우와.. 감도 안 와.

 

낭군: 이제 4,000m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 ㅋㅋ 그런가봐.

 

 

홀에 앉아서 직각방향의 커튼을 다 열어젖히고 주변 뷰를 감상하여, 지나다니는 소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일기를 쓰고 낭군은 소설을 읽었다.

 

조금 앉아있으니 비가 온다.

 

 

낭군: 이왕 오는 거 많이 왔으면 좋겠다.

 

: , 오늘 비 다 쏟아 붓고 내일은 맑을 거야. 우리 오늘 더 안 가고 여기서 묵길 잘했다. 출발했으면 이 비를 맞았을 거 아냐. 진짜 고생했겠어.

 

 

낭군은 비오는 걸 사진 찍는다고 창문을 열고 촬영을 했다.

 

사진에 비오는 느낌이 물씬 난다고 만족스러워하면서.

 

저녁 7시쯤 되니 소들이 마을로 들어온다.

 

어떤 소는 아기소들과 만나 인사하고, 어떤 엄마소는 젖을 물려고 죽어라 쫓아가는 아기소를 귀찮아하며 꼬리로 쳐서 쫓아낸다.

 

또 한 마리는.. 에휴.... 게스트하우스 앞의 쓰레기통을 뒤져 종이 박스를 꺼내고 휴지를 꺼내서 먹는다....ㅠㅠ

 

 

: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소리만 한 열 번 했나보다.

 

먹으면 안 될 텐데, 배탈 날 텐데, 병 걸릴 수도 있는데, 별 별 생각이 다 드는데,

 

주변이 이렇게 초록 초록하고 뜯어먹을 풀도 많을 텐데, 왜 소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쓰레기를 먹냐구!!!

 

가만 보니 이 레스토랑 아주머님이 남은 음식쓰레기들을 모아서 작은 통에 넣어 소 밥으로 쥐는 것 같던데, 그런 것만 먹으라구~~~~

 

 

잠시 후에 주인집 막내아들이 나와서, 소가 뒤져서 먹던 쓰레기통에 불을 붙여서 쓰레기들을 태운다.

 

아마 저 커다란 통은 종이와 휴지들만 모아놓은 것 같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려는 나름의 노력이구나.

 





저녁 식사는 730분이나 되어야 준비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715분쯤 저녁 식사 준비 완료.

 

오늘 저녁 메뉴는 인도식(인도 카레 아님, 인도식 카레임) 카레, , 가지(호박인지 또는 내가 모르는 야채인지 모르겠지만...)볶음, 생양파볶음, 야채스프에 흰 쌀밥이 나왔다.

 

일단 차려진 상으로 보기엔 꽤 진수성찬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배고팠던 터라, 살짝 흥분해서 흰 쌀밥을 내 접시에 담고 있는데,

 

 

낭군: 부인! 너무 많이 담지는 마.

 

: ? 맛이 이상해?

 

낭군: 쌀이... 안 익었어. 압력밥솥을 쓰지 않는 이상 당연하긴 하네.

 

 

이 곳 고도가 거의 4,000m가 되니, 일반 솥에 밥을 하면 쌀이 설익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낭군: 거긴 압력밥솥 쓰는 것 같던데.

 

: 어디?

 

낭군: 비빔밥 먹은 집.

 

: ~~~~!!!! 그래서 맛있었구나.....

 

 

생각해보니, 이 곳 잔스카르 고산 지역에 와서 빵이 아닌 밥은 먹은 건 비빔밥 두 번과 볶음밥 한 번이었는데,

 

인도 식당에서 먹은 볶음밥 역시 덜 익긴 마찬가지였다.

 

푹 찐 듯한 쌀밥을 좋아하는 낭군으로서는 입에 안 맞는 게 당연했다.




저녁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이 곳 게스트하우스로 차가 여러 대 들어온다.

 

 

낭군: 외국인인데? 이 시간에 여길 도착했으면 오늘 여기서 묵겠는데? ... 방송팀인가?

 

: 어디? ?

 

낭군: 카메라 장비가 엄청 나. 인터뷰 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ㅋㅋㅋ

 

: 우와, 재밌다. 여기서 나갈 때 이거 빨간 패딩 벗고 나갈 거야. 이거 너무 초라해. 낭군도 패딩 벗어.

 

 

가만히 창 밖을 보고 있으니 차 네 대가 한꺼번에 주차하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엄청난 카메라 장비를 들고 있는 사람도 함께이다.

 

모든 곰파에서 만났던 붉은 천으로 온 몸을 둘러싼 스님이 한 분 같이 내리시는 걸 보니, 아마 그 스님이 거주하시는 곰파로 촬영을 가는 것 같았다.

 

다들 고산병이 없는지, 아니면 우리처럼 레에서 적응을 하고 오셨는지, 거의 4,000m가 되는 이 곳에서 다들 멀쩡해 보인다.

 

우르르... 홀로 들어와서 블랙티를 마시며 서로들 수다를 떠느라 바쁘다.

 

대화하는 걸 보니 프랑스어를 쓰는 것 같다.

 

이 집 큰아들들은 다함께 커다란 검정 가방을 2층 숙소로 옮겨 드리느라 정신이 없다.

 

대충 보기에 그 가방들에도 장비들이 들어있는 것 같다.

 

소규모 촬영팀이 방문한 것 같다.

 

 

낭군: 나는.. 오늘 우리만 손님인 줄 알고, 여기 이러면 어떻게 유지하나 했어. 이런 식으로 대규모 손님들이 묵는구나.

 

: , 오늘 여기 게스트하우스 완전 풀이겠는데? 꽉 차겠어. 저 사람들 최소 10명이야. 15명쯤 되는 것 같아.

 

 

, 일단 오늘 조용하긴 그른 것 같고.

 

숙소도 전부 같은 층에서 묵게 되었으니 아마 내일 아침에도 얼굴을 마주치게 될 터였다.

 

이렇게 산골 마을에 이만큼 커다란 홀이 왜 필요한가 했더니, 지금의 상황을 보니 이해가 된다.

 

물도 아예 1.5L짜리 생수통 15개를 한꺼번에 차에서 내려다 홀에 놓는다.

 

아마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이 사람들이 마실 물이겠지.

 

촬영 장비와 이런 필수 음식들을 싣고 움직이려니 차가 많이 필요하겠구나.

 

그래도, 이 사람들은 다행스럽게 오늘 파듐 주유소에 기름이 채워졌으니 우리처럼 난감한 상황은 겪지 않겠네.

 

 

저녁식사 후 숙소에 올라가며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냐고 물어보니, 양동이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방으로 가져다주신다.

 

... 이 곳도 온수는 안 되는 곳이구나.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잘 채비를 했다.

 

확실히 고산인데다 오늘 날씨도 흐려서 그런지 쌀쌀해서 위 아래 내복을 모두 입고 침낭에 쏙 들어가서 숙소의 담요를 침낭 위로 덮고 잠이 들었다.